
'수원동신교회'는 조용히 흐르는 수원천이 내려다보이는 골목길 안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칫 스쳐 지나칠 만큼 소박한 외관은 오래된 시골 교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화려함 대신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신앙의 흔적이 공간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는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 속 한 페이지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지역사회와 함께해 온 교회는 규모보다 복음의 뿌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데 의미를 두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세운 사람은 일본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 노리마츠 마사야스(1863~1921)입니다.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1863~1921)는 일본 개신교 최초의 해외 선교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6~1897년 무렵 조선에 들어와 수원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고, 훗날 수원동신교회의 초석을 놓은 인물입니다. 그의 삶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일본인 선교사'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리마츠는 조선을 선교의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기모노 대신 한복을, 게다 대신 짚신을 신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일본어보다 한글을 먼저 가르쳤죠. 마을 아이들에게 안약을 넣어주고 몸을 씻겨 주었으며, 병든 이에게는 약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사역과 사람을 섬기는 일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수원 매향동 일대에서 '수원성서강당'을 시작했고, 이것이 오늘날 수원동신교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사역에는 가족의 헌신도 함께했습니다. 아내 사토의 일화는 유명한데,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찾아온 성도들을 대접하기 위해 머리칼을 잘라 팔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일본인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삶과 명예, 그리고 생명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사토에게는 그것보다 복음과 이웃이 소중했습니다. 선교는 거창한 사역 이전에 누군가를 맞이하는 삶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무명(無名)의 이름으로 건넨 복음'
노리마츠 선교사의 삶은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의 이름만 나타내길 원했고, 소속 교단 기독동신회의 방침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CGN의 다큐 영화 <무명>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다시 조명되었습니다. 이름 없이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인 선교사의 삶은 세대를 넘어 오늘날 성도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고, 지금은 '찾아가는 상영회'로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31일, 노리마츠 선교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수원동신교회에서 영화 <무명>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의 성도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고, 평소와는 사뭇 다른 기대감이 감돌았습니다. 스크린 속 선교사의 삶은 역사가 되었지만, 그 정신은 성도들이 앉아 있는 이 교회에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스크린과 스피커, 조명은 극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박했지만, 성도들의 시선은 한순간도 스크린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집중은 선교사를 향한 늦은 경의처럼 깊고도 뜨거웠습니다.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나 안정된 삶을 거절하고 조선으로 향한 노리마츠. 일본인을 향한 경계와 냉대 속에서 '나는 더욱더 조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라고 선언한 그는 끝까지 조선을 사랑했습니다.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라는 신분과 국적의 담론을 넘어,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영혼을 찾았습니다.
100여 년 전 수원의 골목마다 복음을 전했던 노리마츠 선교사.
당장이라도 교회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 어귀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남긴 복음의 열매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몇몇 성도들은 눈물을 훔쳤고,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습니다.
"복음의 가교에서 '다리는 밟혀야 한다'는 메시지가 잊히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모습의 크리스천인지 돌아보았습니다." - 진 영(성도)
"온전한 조선인으로 사역한 노리마츠를 보며,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지극히 낮은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을요." - 강선미(성도)

수원동신교회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선교를 이어가는 공동체입니다. 주보 상단에는 '전도와 선교하는 교회가 되자.'는 다짐이 적혀 있는데, 한효성 담임 목사는 이것이 수원동신교회의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지역 사회를 섬기는 사역을 넘어 노리마츠 선교사의 정신을 따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편 영화 <무명> 개봉 이후, 600여 명의 성도들이 전국 각지에서 수원동신교회를 찾았다고 합니다. 노리마츠가 남긴 선교 정신은 지금도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어지는 복음
수원동신교회 예배당 뒤편에는 소박한 비석이 서 있습니다. 묘비에는 노리마츠 마사야스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죠. 선교사는 고국 일본이 아니라 조선 땅에 묻히길 바랐고, 실제로 일본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뜻에 따라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묘지 옆에는 고추와 상추, 오이 같은 채소가 자라는 작은 텃밭이 있었습니다. 마치 지금도 평범한 이웃들 곁에 머물러 있는 듯한 풍경이었죠. 조선 땅에 묻히기를 원했던 그의 마음이 자연스레 겹쳐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선교사는 거대한 건물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직함도, 유명세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고, 한 공동체를 세웠고, 한 세대가 믿음을 이어갈 토양을 남겼습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발자취는 남아 있고, 그 걸음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름은 잊힐 수 있지만, 복음으로 살아낸 삶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 영화 <무명(無名)> 찾아가는 상영회
신청하기: https://naver.me/xHmjgCCb / 문의 : 02)3275-9364 (커뮤니케이션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