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참 잘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종종 탄성이 터집니다. 어디에서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지 경이로울 정도죠.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마치 심사위원처럼 평가를 하곤 합니다. 고음을 어떻게 시원하게 뽑아내고, 음정은 얼마나 정확하며, 소리는 어느 정도로 단단한지…. 매의 눈으로 냉정하고도 날카롭게 말이죠. 그렇게 누가 잘했고, 누가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며, 누가 눈물을 훔치며 무대를 떠나는지를 지켜봅니다.
그런데 노래 안에 담긴 것이 정말 그뿐일까요? 왜 저 노래를 부르는지, 저 목소리는 어떤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 저 한 소절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목소리에는 자신의 흔적이 담깁니다.
기뻤던 날도, 울었던 밤도, 오래 기다렸던 시간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도. 그 모든 것이 노래가 되어 흘러나오죠. 그래서 좋은 목소리와 오래 기억되는 목소리는 조금 다를지 모릅니다. 잘 부르는 목소리가 귀를 사로잡는다면, 살아본 목소리는 마음을 붙잡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치유하는 목소리는 어떤 목소리일까?’
‘비파와 수금’에서 ‘마이크’까지

성경에는 노래하는 사람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다윗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왕으로 기억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왕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왕이 되기 전 그는 들판에서 양을 돌보던 사람이었고, 때로는 광야를 떠돌며 자신의 목숨을 지켜야 했던 사람이었죠. 그리고 그의 손에는 비파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의 노래가 늘 아름답고 밝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시편에는 찬양과 감사가 있지만, 그만큼의 탄식과 질문도 많았습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노래는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현실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는 또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기쁘면 기쁜 대로,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무너졌다면 무너진 마음 그대로 노래했습니다. 찬양과 탄식, 감사와 질문, 고백과 기다림.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한 사람의 목소리 안에 뒤섞여 있습니다. 수천 년 전 다윗의 손에 들려 있던 비파가 오늘날의 마이크로 바뀌었을 뿐,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같은 노래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CGN <힐링보이스>에는 그 마음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32명의 목소리, 32개의 삶

<힐링보이스> 첫 회에는 '32명의 보이스'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조금 다르게 읽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32명의 목소리. 32개의 기다림. 32개의 고백. 32개의 인생…’
총 1,602명이 지원한 <힐링보이스>에는 어린이부터 70대까지, 국내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가운데 32명의 보이스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화면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노래가 시작되면 이력서는 잠시 사라집니다. 몇 살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경력이 화려한지 아닌지 보다 먼저 들려오는 건 그 사람의 목소리, 걸어온 시간입니다. 그래서 같은 노래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슬픔을 겪어본 사람이 부르는 위로, 기다림을 경험한 사람이 부르는 소망, 상처받아본 사람이 부르는 사랑은 다릅니다. 악보는 같지만 노래는 같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힐링보이스>는 엄연한 오디션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 재미있는 질문이 생기죠.
'힐링'과 '경쟁'은 어울릴까?
‘힐링’에도 순위가 있나요?
오디션이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전제로 합니다.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내려옵니다. 그런데 <힐링보이스>는 이 익숙한 문법에 조금 다른 단어를 가져왔습니다.
'심사위원' 대신 ‘힐링멘토’, '참가자' 대신 ‘보이스’.
그리고 경연에서 무대를 내려오는 사람을 ‘탈락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은 이를 ‘세상으로 파송되는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단어 하나를 바꾼다고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관점은 달라집니다.
누구의 상처가 더 깊은지, 누구의 위로가 더 좋은지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힐링보이스>는 오디션이라는 장르에 낯선 전제를 둡니다. ‘누가 더 잘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가 어떻게 가닿는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힐링보이스>라는 제목이 이미 알려주는 것이죠. 물론 무대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경쟁과 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군가를 이기고 제일 꼭대기로 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기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함께 살아나는 무대. 이것이 <힐링보이스>가 건네는 조금 다른 오디션의 모습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왜 눈물이 나죠?

그래서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도 흥미롭습니다.
“거의 두 시간 내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 같았다"라는 감상이 있는가 하면, “한 분 한 분 보석 같은 분들이 오셨다"라는 고백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한 참가자의 찬양을 들으며 성경 구절을 떠올렸고, 또 누군가는 노래를 듣다가 자신의 상처와 회개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들이 들은 것은 ‘잘 부르는 노래’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한 사람의 삶을 통과한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삶에 닿은 것입니다. 아마 이것이 목소리가 가진 이상한 힘일 테죠. 시청자는 참가자의 삶을 알지 못합니다.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노래를 듣다가 문득 내 마음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탄식에서 나의 탄식을 발견하고,
누군가의 고백에서 나의 고백을 발견하고,
누군가의 소망에서 내가 잊고 있던 소망을 다시 발견합니다.
그 순간 목소리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무대 위의 한 사람과 화면 앞의 한 사람이 노래 하나로 연결됩니다.
▪ VOICE OF VIEWERS
“모든 참가자분들의 노래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부르는 고백, 찬양, 그 노래들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생명의단비)
“거의 두 시간 내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 같았어요.” (KoG-Dreamer)
“눈물샘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왜지? 이분들이 삶을 통틀어 고백하는 그 울림이 내 영혼에 깊이 닿아서 절로 회개와 초월과 오랜 상처로 인한 각인을 회개하게 됩니다. 찬양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정말 감사합니다.” (Paul0bada-h5e)

내 목소리가 나를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것.
내가 지나온 시간을 노래하고, 그 노래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만나는 것.
그때 목소리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국경도, 세대도 넘어갑니다. 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음악이 먼저 도착하는 순간입니다.
세상을 치유하는 목소리
<힐링보이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보이스들의 노래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 무대를 보는 방법 하나쯤은 조금 다르게 가져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더 잘했는지에 골몰하기보다 ‘이 사람은 어떤 시간을 지나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를 들어보는 것이죠. 그렇게 듣다 보면 무대 위의 사람만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 순간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르죠.
‘나는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비파가 있을 것입니다. 악기일 수도 있고, 목소리일 수도 있고, 글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짧은 한마디일 수도, 작은 손짓일 수도 있죠. 그 비파가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누군가에게 생명을 건네는 것으로.
다윗의 비파에서 시작된 오래된 노래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어쩌면, 오늘 우리가 부르는 아주 작은 한 소절도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되지 않을까요?
<힐링보이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