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명>을 보던 중, 오다 나라지라는 인물이 등장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습니다.'
아버님 살아생전, 은인(恩人)이라고 누누이 말하던 일본인 선교사!
그렇게 찾아 헤맨 사람을 드디어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 김구식 장로(만리현 성결교회)


김구식 장로(84, 만리현 성결교회)의 성경책 앞과 끝 페이지에는 낯선 한자어가 쓰여 있습니다. '織田楢次.' 한글로 읽으면 '직전유차', 그 앞에는 은인(恩人)이란 글자가 또렷합니다. 아버님 살아생전, 은인이라고 누누이 얘기한 일본인 선교사, '오다 나라지'의 이름이죠. 이 이름은 지난해 개봉한 CGN 20주년 다큐 영화 <무명(無名)>에도 등장합니다. 오랫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인물이, 비로소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땅에는 이름 없이 복음을 전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인 선교사들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더 깊이 가려진 존재였죠. 그들은 이 땅의 복음화에 기꺼이 양분이 되었고, 그렇게 '무명(無名)의 은인(恩人)들이 되었습니다. 오다 나라지 선교사(1908-1980) 역시 그중 한 사람입니다.
김구식 장로 : 1933년, 만리현 교회 창립 1주년 기념사진을 보면 153명의 성도들 뒤편에 네댓 명의 일본인 선교사가 있습니다. 어릴 적 아버님은 일본에서 온 선교사들이 교회 창립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들이 우리 교회로서는 은인이다.'하셨죠. 후에 그중 한 선교사님의 이름을 한자로 받았는데, '織田楢次'였습니다. 어릴 적 기억에 '직전'이란 이름을 들었는데 그것이 일본식 발음 '오다'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죠.


'예수천국! 불신지옥!'
생명을 내건 외침
교회 창립 직후였던 1933년에는 효창동과 공덕동 일대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쳤습니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노방전도를 멈추지 않았죠. 당시 함께 전도하던 일본인 선교사들과 찍은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김 장로는 그들을 꼭 다시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 장로 : 특히 사진 속에서 누가 오다 나라지 목사님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화 <무명>을 보게 된 거죠.


(좌) 1933년 노방전도 후 기념사진 찍은 성도들(만리현 교회), (우) 설명하는 김구식 장로
김구식 장로는 오다 나라지 목사를 조사하려고 일본까지 갔지만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무명>의 제작진 역시 자료 찾기가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일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숨겨진 선교사였죠.
김 장로 : 영화 상영 직전, 교인들에게 "혹시 영화를 보는 중에 우리 교회 창립 시 도움을 주신 오다 나라지 목사님이 나올지 모르니까 잘 찾아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도중에 '오다 나라지'가 등장했으니 얼마나 놀랐는지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지요. 이 사실이 공표되었다는 데에 감격했습니다. 서구권 선교사에 비해 일본 선교사들의 기록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CGN 영화 <무명>은 잊힌 이름들을 다시 불러낸 의미 있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결단
김 장로는 아버지와 오다 나라지 선교사, 두 분의 접점 중 하나로 '신사참배 거부'로 꼽았습니다. 1932년 만리현교회가 창립될 당시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극에 달했을 때로 정치, 사회, 경제적 핍박뿐 아니라 종교탄압도 거셌습니다. 신사참배를 국민에게 강요했고 거부하면 실제적인 불이익이 따랐습니다. 그런 시대적 엄혹함 가운데 많은 기독교인들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암암리에 거부 운동을 했습니다.
김구식 장로 : 길선주 목사님이 젊은이들과 은밀하게 신사참배 거부를 준비하셨습니다. 저의 아버님도 그 뜻에 함께하셨죠.
당시 아버님은 일본 철도국 직원이셨습니다. 1937년 봄 어느 날, 출근하시기 전 어머니에게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오늘 회사 가면, 큰일이 날 거야…" 신사참배를 거부하겠다는 뜻이었죠.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담담하게 답하셨습니다.
걱정 마, 죽으면 우리 다 천국에 가는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영화 <무명> 속, 평양 숭실대에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외치는 오다 나라지 목사
결국 죽음을 결단하고 신사참배를 거절한 김구식 장로의 아버지, 김정용 성도는 용산 경찰서에 투옥되었습니다. 당시 용산 경찰서는 악명 높았죠. 모진 고문과 집요한 회유책이 벌어졌지만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김 장로 : 어머니는 면회에서 뵌 아버지 모습이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얇디얇은 홑겹 한복을 걸치고 차디찬 바닥에서 무릎 기도를 하다보니 옷이 다 찢어져 너덜거렸죠. 면회에서 돌아온 이후 어머니는 밤샘 기도를 하셨고, 이후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다음 날 남편의 면회를 재청한 김구식 장로의 모친(권소재 권사)은 면회를 거절하는 일본인 순사와 옥신각신했고, 그 와중에 둘러업고 있던 한 살배기 셋째가 혼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이의 호흡이 멈추자, 그녀는 경찰 서장실로 뛰쳐 들어가 아이 아버지를 풀어달라고 외쳤습니다.
"고도모 신다. 소세끼! 소세끼! (子供(こども) 死んだ. 葬式! 葬式!)"
(아이가 죽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게 해주세요!)
우여곡절 끝에 풀려난 아버지와 가족은 교회 분들과 모여 기도하던 중,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숨이 멎었던 아이가 다시 호흡을 되찾은 것이죠. 그 일에 대해 김구식 장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김 장로 :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신사참배 사과 사절단이 한국에 왔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그들에게 아버지가 두 가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다 용서했다는 것, 둘째는 신사참배 거부 당시 당한 고난이 평생의 신앙에 도움이 됐다는 말이었죠. 감옥에서 무릎 기도를 하며 얻은 상처가 일평생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신앙의 표적이라고도 고백하셨습니다. 오히려 고맙다는 아버지 앞에서 일본 사절단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신사참배 거부를 통해 하나님께 드렸던 순수한 신앙과 헌신의 결단이
평생 신앙생활을 흔들림 없이 할 수 있었던 유익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김정용 장로(김구식 장로의 친부)
신앙의 유산
김구식 장로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장 큰 유산으로 '신앙'을 꼽았습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를 언급했죠.
김 장로: 첫째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고, 둘째는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묵상입니다. 성경에도 적어준 문장은 지금도 삶의 기준입니다.
'내게 이롭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싫어요,
내게 해롭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멘'입니다.'


이 둘을 평생의 교훈으로 품고 살아온 김 장로는 '은혜 입은 자'에서 '은혜 전하는 자'로의 남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마치 무명의 선교사들이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했듯이, 이제 자신이 그리고 지금의 성도들이 '세대를 잇는 복음의 가교'가 되길 바란다고 했죠.
부모님의 신앙의 유산을 받아, 오늘까지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가 누린 가장 큰 복입니다.
제가 받은 믿음의 유산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징검다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구식 장로
김구식 장로는 한국에 뿌려진 복음이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에 자랑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일본 선교사들에 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죠. 일본은 한국에 역사적 과오가 많지만, 일본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헌신한 사실은 구체적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김 장로 : '그분들의 이야기는 한국 선교 역사의 한 페이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무명>이 숨겨진 선교사들을 찾아내는 귀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도운 일본 선교사들이 음으로 양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죠.
일본인 오다 나라지 목사님이 한복을 입고 복음을 전했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한복을 입고 목회를 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한국을 사랑했던 일본 선교사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실을 발굴해서 감사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요? 같은 신앙의 동지로 말입니다.
이름 없이 사라진 줄 알았던 사람들.
그러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들은 여전히 ‘신앙의 은인’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세대를 넘어 흐릅니다.
조용히 흐르지만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말이죠. 여러분에게도 이런 신앙의 은인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가족일 수도, 친구나 이웃일 수도, 어쩌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흐르고 있을까요.